"잘츠부르크는 카라얀의 도시이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고향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모차르트의 의문의 일패같은 말을 하기도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모차르트가 클래식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반짝반짝 작은 별'을 시작으로 온 세계에서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그의 음악은 끊이지 않고 연주되고 있으니 트랜드를 따라 잠깐 인기를 얻고 잊혀지는 음악들은 감히 비교의 대상도 될 수 없겠죠?
1.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오스트리아)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잘츠부르크 교회당의 부악장이자 궁정 전속 작곡가였던 부친 레오폴트에게서 태어났는데, 7명의 남매가 있었지만 끝까지 살아 남은 형제는 누나 마리아 안나 뿐이었다고 해요. 모차르트는 누나와의 관계가 돈독했고 그에 관련된 일화도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차르트가 3세 무렵, 5살 연상의 누나가 클라비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모차르트가 누나의 레슨이 끝나지마자 그 곡을 완벽하게 연주했다고 하죠. 이후 5세부터 아버지에게 클라비어를 배워 6세 때 클라비어 소곡을 작곡한 모차르트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퍼졌고, 아버지는 남매를 데리고 유럽 전역으로 연주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고사리같은 손으로 가뜩이나 집중력도 떨어지는 6세 남자아이가 뚝뚝거리는 마차를 타고 머나먼 비포장 유럽 전역 80여개 도시 순회 공연을 하며 떠도는 일이 얼마나 고역이었겠어요?)
모차르트에 얽힌 일화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루이 15세 앞에서 천재적인 연주를 선보여 5개월 간 파리에 머물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고도 합니다. 더 유명한 일화는 합스부르크 황제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처럼 화려한 궁전을 갖고 싶어 지었던 빈의 쇤부른 궁전에 초청되어 궁정 음악회를 열었는데, 이 곳에서훗날 루이 16세의 아내가 되는 2개월 연상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만나게 된 사건입니다. 워낙 장난꾸러기였던 모차르트가 장난을 치다 실수로 넘어졌을 때 마리 앙투아네트가 일으켜 세워줬는데, 모차르트의 연주에 감명을 받은 여황제가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자 '안토니오 공주와 결혼하고 싶습니다'라고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청혼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18세의 나이에 이미 200여 곡을 작곡하여 출판했다고 하니 그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겠으나, 성인이 된 모차르트의 입지는 예전같지 않았습니다. 13세에 모차르트를 관현악장으로 임명했던 잘츠부르크 대사교도 세상을 떠났고, 모차르트를 총애하던 오스트리아의 황제도 사망했으며, 새로 바뀐 대사교는 장기 연주 여행 허가를 요청한 모차르트의 요청을 받아 주지 않아 모차르트는 결국 사직원을 제출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생활고의 시작인건가?)
이후 어머니와 파리에 방문했을 때 알게 된 베버 가문의 큰딸 알로이지아와 사랑에 빠졌지만 곧 실연당한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1782년 26세의 나이로 알로이지아의 동생 콘스탄체와 결혼하게 됩니다.(엥? 무슨 시츄에이션인가요?)
생활고에 시달리던 모차르트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 하이든를 만나게 되는데 하이든은 그에게 '위대한 작곡가'라고 격찬했다고 하네요. 1785년 그 유명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여 연주하고 명성은 높아지고 있었지만 빈곤은 점점 더 그를 괴롭혔습니다.
2. 자신이 자신의 장례식을 위해 지은 미완의 완성곡 <레퀴엠>
병마와 경제적인 빈곤에 허덕이던 모차르트는 <레퀴엠> 작곡을 의뢰받는데 그는 의뢰자를 '죽음의 사자'가 자신을 찾아왔다고 말하면서 작곡에 착수했지만, 완성되지 못했 채 당시 유행하던 악성 장티푸스에 걸려 1791년 향년 3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애석하게도 빈의 관리는 전염을 두려워 하여 모차르트 유행를 공동묘지에 여러 시체와 함께 매장해 버렸고, 그의 죽음을 알게 된 친구들과 아내가 찾으러 왔을 때는 매장된 정확한 장소조차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중앙묘지에 가면 이름만 들어도 후덜덜한 음악가들이 그 묘비석과 함께 안장되어 있는데 모차르트는 그 유해와 묻혔던 곳도 찾을 수가 없어서 그저 묻혔을 것이리고 추정되는 곳에 가묘를 세워 놓았는데 가장 많은 꽃다발이 그의 불운한 마지막을 장식해 줄 뿐이니 클래식 음악계의 가장 큰 슬픔이라고 할 수 있겠죠ㅠㅠ
3. 괴짜에 대해 다하지 못한 이야기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 6개의 성부 합창곡인 '내 엉덩이를 핥아줘(Leck mich im Arsch'라는 곡이 있는데, 파티에서 부르기 위해 작곡된 2분 정도의 곡으로 26세에 지은 이 곡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분뇨기호증이라는 정신병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악의없이 사람들에게 아재 개그로 웃음을 줄 줄 아는 위트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클래식 음악가4] 건반 위의 시인 쇼팽 (1) | 2024.01.21 |
---|---|
[클래식 음악가 3] '파파'라는 애칭을 지닌 하이든 (1) | 2024.01.21 |
[클래식 음악가2] 바흐를 환생시킨 카잘스를 아시나요? (0) | 2024.01.20 |
[클래식 음악가1]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2) | 2024.01.20 |
[클래식] 첼로(Cello)의 풀네임(Full-name) 아시나요? (0) | 2024.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