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 1841년~1904년, 체코)
1841년 9월 8일, 지금의 프라하인 보헤미아프라하의 외딴 시골 넬라호제베스에서 여관 겸 푸줏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드보르작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싹튼 음악적 재능과 적극적인 태도를 지내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국민학교 교사에게 바이올린과 성악의 기초 교육을 받게 하였고, 16세였던 1857년부터는 프라하로 나가 오르간 학교에 입학하여 2년 간 음악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는 졸업 후 레스토랑·호텔 등에서 비올라를 켜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1862년 프라하에 가설극장(훗날의 국민극장)이 신설되자 그곳의 비올라 연주자가 됩니다.
드보르작은 1866년 가설극장의 지휘자로 취임한 B. 스메타나에게 큰 영감을 얻어 기악에 대한 공부에 열정을 쏟게 되는데, 32세 때 애국적 제재를 다룬 칸타타를 만들고부터 완전히 자신감도 얻게 되고 세상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그리고는 당시 고조된 민족운동 사조에서 음악가로서 체코의 민족문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죠. 그래서 슬라브족 춤곡 형식을 도입한 보헤미안의 정서가 넘치는 곡을 많이 작곡하게 되고 훗날그를 '국민악파'라고 칭하게 됩니다.
오스트리아 정부의 장학금을 얻기 위해 매년 작품을 제출하던 중, 1877년 심사원이던 브람스에게 인정을 받아 베를린에 있는 출판사에서 작품이 출판되면서 더욱 유명해졌고, 그 이름이 체코를 넘어 미과 영국에 알려지고 50세였던 1891년에는 프라하음악원 교수가 되고, 케임브리지 대학으로부터 명예음악박사 학위를 받게 됩니다. 이 때부터 여러 연주자가 그의 실내악이나 관현악곡을 베를린·런던에서도 연주하게 되어, 그의 명성은 국내외로 퍼졌으며 1878년부터 지휘를 시작하여 1884년 이후 영국을 9회나 방문하여 자신이 작곡한 곡을 지휘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1895년 4월 프라하로 돌아온 후로는 음악원의 작곡 교수직과 창작에 전념하여 1901년에 60세의 나이로프라하음악원 원장이 되었고, 오스트리아 상원의원에 임명되는 등 음악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으나, 1904년 5월 1일, 신장병으로 갑자기 사망하였고, 5월 5일에 국민장이 거행되었습니다.
자산이 10조원이 넘는 체코의 오일 사업가 코마렉이 이런 체코의 보물인 드보르작의 작품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자 2008년부터 드보르작의 프라하 뮤직 페스티벌을 공동으로 개최하는 등 체코 국민들은 국가의 영웅을 영원히 기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 명곡 <신세계로부터>의 탄생
드보르작은 52세 되던 1892년에 뉴욕의 내셔널음악원 원장으로 초빙되어 미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 이듬해 미국에서의 신선한 인상을 소재로 한 교향곡9번 "신세계 From the New World"를 작곡했습니다. 1893년에 작곡된 이 <신세계로부터>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기도 하지만, 체코출신으로 미국이라는 신대륙의 기상에서 희망을 얻어 에너지가 넘치는 곡으로 작곡되고 오늘날까지도 오케스트라와 청중들에게 사랑받는 교향곡입니다. 우리나라 영화 '암살'에서 독립 투사를 기리는 장면에 2악장이 삽입되었다고 하네요. 1895년까지 재직하면서 이 미국 체류 기간 중에 미국의 음악을 연구하여 많은 명곡을 남겼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1SEk87ju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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