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데스트 페트로비치 무소르그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 1839-1881,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남쪽 400km에 위치한 러시아 제국 프스코프 주의 카레보에서 제법 큰 토지를 소유했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무소르그스키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귀족의 딸로 숙련된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치리코바에게 6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가르침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무소르그스키는 3년 후에는 가족 콘서트에서 존 필드의 협주곡과 프란츠 리스트의 작품을 연주할 정도로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13세였던 1852년 근위사관학교에 입학하여 7년 후인 1859년 20세의 나이로 임관되자 곧 예비역에 편입되었습니다. 생도 시절부터 피아노 즉흥 연주에 뛰어났었던 그는 뒤늦게 거의 독학으로 음악공부를 이어가던 중 5인조의 수장 격이었던 밀리 발라키레프에게서 체계적인 작곡을 배우면서 비로소 자신의 몸속에 내재되어 있던 음악적 재능을 꽃피우게 됩니다. 이후 국민악파 5인조의 일원으로 활약하면서 러시아 민요의 표현 요소 등을 소재로 하여 가장 우리들과 친숙하고 진실한 음악을 작곡하였으며, "예술은 그 자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하여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말이란 음악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음악의 연주는 감정을 높이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담화와 억양을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 옵니다. 1861년 농노해방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으로 1863년부터 관리가 되고, 1865년 어머니가 죽자 심한 음주벽과 신경쇠약으로 굉장히 우울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무소르그스키는 1870년에 스승인 발라키레프를 통해 건축가이자 화가인 빅토르 하르트만을 소개받습니다. 두 사람은 이내 절친이 되지만 하르트만은 1873년 8월 동맥류 파열로 요절하고 말죠. 어머니가 별세한 스물여섯 살 때부터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무소르그스키는 하르트만이 죽은 뒤에도 술로 슬픔을 달래야만 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서서히 생활이 무너져 내리면서 1880년에 마침내 공직에서 해고되기에 이르지만, 그는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친구들은 <호반시치나>(Khovanshchina)가 완성될 때까지 그에게 생활비를 후원할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소로친치 시장>(Sorochyntsi)의 작품활동을 마치도록 그에게 급여를 주기 위한 기금을 모으기도 하였습니다.
1881년에 들어서서 생활고와 미완성 상태인 작곡으로 인해 절망에 빠진 무소르그스키는 친구에게 '구걸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2월 들어 병세가 악화되며 3번이나 연속 알코올성 간질 발작을 겪은 무소르그스키는 섬망에 시달렸기 때문에 일시적인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 행동장애를 겪었고 당장 요양이 필요했습니다. 이번에도 친구들은 그를 위해 돈을 모아 좋은 병원으로 데려갔고, 몇 주 동안 회복세를 보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호전되지 않았고 1881년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2. <전람회의 그림>의 탄생
친구들은 무소르그스키를 위로하기 위해 이듬해 2월 하르트만의 유작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크게 기뻐한 무소르그스키는 하르트만의 그림 열 점에서 얻은 영감으로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을 완성한다. '전람회의 그림'은 열 점의 그림에서 느낀 각기 다른 감정을 표현했다. 따라서 곡은 극적 변화를 보여준다. 때로 경쾌했다가 이내 무겁게 가라앉는다.
오늘날 무소르그스키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길고 지독할 정도로 어려운 피아노 독주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은 1874년작인데, 1881년 그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할 당시 이 작품은 초연도 출판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무소르그스키가 죽은 직후, 러시아 국민음악 5인조의 막내이자 한동안 그와 함께 살았던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죽은 친구의 작품 출판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소르그스키가 고려한 화성적 기이함과 관현 악법상의 약점들에 손을 댔다. 거의 완성 직전이었던 오페라 <호반시치나>는 림스키-코르사코프에 의해 완성되어 1886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 역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손에 의해 1886년에 출판되었다. 오늘날 널리 연주되는 관현악 버전은 프랑스 출신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 편곡한 것이다.
일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어린 아이들의 심성을 잘 읽을 줄 알았기에 어린이와 동시를 소재로 한 음악들을 쓸 수 있었던 무소르그스키. 우리가 흔히 가질 수 있는 독일어에 대한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슈베르트의 가곡 선율이 잘 어우러지고 녹아들게 하듯, 어려운 러시어 어의 발음을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선율로서 한편의 '러시아식'가곡이 될 수 있게끔 연구하기도 노력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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