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Bedrich Smetana, 1824-1884, 체코)
1824년 3월 2일 보헤미아(지금의 체코)의 리토미실에서 맥주 양조업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스메타나는 5세 때 4중주곡을 연주할 수 있었고, 6세 때 피아니스트로서 대중 앞에 서는 등 어릴 때부터 피아노 연주에 뛰어나 피아노 연주자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모차르트에게서 작곡을, 리스트에게서 피아노를 배우려고 결심한 스메타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찍이 프라하에 나가 카테리나라는 소녀와 소년 2중주단을 만들어 생활하면서, 소녀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고, 소녀의 권유로 요제프 프록시에게 피아노와 음악이론을 배웠습니다. 프록시는 스메타나의 재능을 인정하여 무보수로 가르쳤고, 레오폴트 탄 백작가의 전속 악장으로 취임하여 겨우 운이 트이는 계기를 잡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의 통치하에 있었고, 1848년 오스트리아 2월 혁명의 여파로 프라하에도 6월에 혁명운동이 일어나자 스메타나도 혁명의 물결에 동참하였고, 그 결과 요주의 인물로 지목 받게 됩니다.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놓인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으로서 의식에 눈을 뜬 그는 민족운동에서 작곡가의 역할에 대해 새삼 자각하게 되었고, 혁명 실패 후 가혹한 악업시대로 접어들자, 1856년에 스웨덴으로 건너가 그곳 괴텐부르크 하르모니스카 사라카헤트의 지휘자로 취임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북국의 차가운 바람은 그의 사랑하는 아내 카테리나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죠. 1859년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에게 이겨 체코 국민의 예술 의욕은 또다시 싹텄고 스메타나도 1861년 고국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874년 50세의 한창 나이에 숙환인 환청이 악화되어 베토벤과 마찬가자로 그해 10월에는 청각을 완전히 상실하고, 십 여 년을 고생하다가 마침내 1884년 5월 12일, 프라하의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데, 사인은 매독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2. 나의 조국 몰다우
환청에 시달리면서도 스메타나는 1873~1880년에 걸쳐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담은 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연작 교향시 <나의조국>을 작곡하여 민족음악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곡입니다. 프라하로 흐르는 몰다우 강변에 우뚝 선 체코의 옛 성 이름을 딴 <비셰흐라트>, 체코어로 '블타바'인 프라하 시내로 흘러드는 강 이름을 딴 <몰다우> 등 지명과 보헤미아의 아름다운 경치를 담은 이 곡은 1880년 1월에 초연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WFwtMWFL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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