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라는 책은 주기적으로, 몇 번을 반복해 읽을 만큼 사랑하는 책이다. 마음 말캉말캉해지는 운명적으로 끌리는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이겠지만은... 인생에 오만이 잔뜩 끼어 있을 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며 ‘사람이 만들어 낸 선입견이 자기 자신을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방황하게 하는가?’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성찰의 시간을 주는 책이기에 애정하는 책이다. 늘 다짐한다. ‘선입견의 우(愚)를 범하며 살지는 말자고.’
또 한 번의 선입견이 마음 깊은 곳의 울림을 잃을 뻔했다.
‘차!인!표!’ 그가 그랬다.
지난 2025년 8월, 차인표 작가가 황순원 문학상 중 황순원 신진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내게는 늘 빛나는 슈퍼스타였던 차인표라는 사람이 걸친 소설가라는 낯선 옷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소설가가 되어 ‘인어사냥(2022)’이라는 소설로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을 했다는 뉴스는 전혀 현실감이 들지 않는 소식이었다. ‘그가? 언제? 왜? 이렇게까지?’ 좋아하던 배우의 축하할 만한 소식에 기쁨보다는 스쳐지나는 여러 의문에 색안경이 제대로 낀 채로 주책없이 이런저런 기사를 뒤져 뭔가를 확인하려는 나의 모습은 불순하기 짝이 없었다. '평소 존경해 마지 않던 황순원 작가님의 이름을 딴 문학상에 걸맞는 수상이었을까?'라는 의심은 그의 수상에 흠집이라도 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님 선입견이 만들어 낸 편견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그가 전한 ‘이 수상은 제가 앞으로 계속 소설을 써도 된다는 조용한 허락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정말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감동을 남기는 소설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더 겸손히, 깊이 쓰겠다.’라는 수상 소감마저도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가짜와 진짜가 혼재된 뉴스 중 하나로 치부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중, 그의 수상이 단순히 ‘혜성처럼 나타난 신진작가 명분을 갖춘 슈퍼스타에게 우연히 주어진 행운’이라든가 '선행을 베풀며 사는 유명인을 앞세운 여론몰이식 시상식'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피부로 체감하게 되었고,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로 그의 행보에 대해 의심했던 나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마저 느끼게 되었다. 이미 2024년 6월에 그의 책이 옥스퍼드 대학의 필독서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연을 했던 일화를 들으면서 비로소 슈퍼스타인 배우, 삶에서 선행을 실천하는 크리스천, 공개 입양으로 입양에 대한 선한 영향력을 끼친 딸들의 아빠로서가 아니라 소설가 차인표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가 어느 한 날 뚝딱 소설 하나를 써낸 사람이 아닌, 10여 년이라는 아주 오랜 시간의 사유와 실천과 고증 끝에, 고쳐 씀의 고쳐 씀 끝에, 인고의 과정 끝에, 한 작품을 세상에 내논 진심을 소유한 소설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비로소 도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만나게 된 책, 10여 년의 대장정 끝에 2009년 <잘가요 언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지만 판매 부진으로 절판되었다가 2021년 개정판으로 복간된 책,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2021)>.
나는 이 책을 정독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가 책을 집필하고자 마음 먹게 된 건 -오렌지족이 압구정동을 누비고, IMF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의 20세기가 저물어 가던 1997년- 8월 4일, 한 뉴스를 접하고서였다고 한다. 일제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가 55년 동안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다가 캄보디아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훈(이남이) 할머니의 입국 장면을 보면서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고 한다. 55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훈 할머니가 비록 한국어는 다 잊었지만 매일 고향을 그리워하며 되뇌였던 노래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에서 이제 막 30대에 들어서는 중이었던 젊은 청년은 ‘일제에 대한 분노와 소녀들을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단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7년 4월 방문한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영정 사진을 촬영하고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며 ‘머지않아 이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할머니들은 영영 사과를 받지 못하겠구나, 우리는 할머니들의 한맺힌 사연을 잊겠구나. 나라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써야겠구나’라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고, 그동안 ‘쓰다 말다’를 반복하던 책을 드디어 출간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이 그의 삶과 닮아 있다고 느껴지는 점은 소설을 쓰는 내내 본인 어머니에게 매번 메일을 주고받으며 검수(?)를 받고 어머니의 조언을 묵묵히 따르고, 상상 속에 머문 감정과 서사들을 엮어내기 위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 직접 가보는 수고까지도 아끼지 않는 성실함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작가에 대한 이런 일련의 스토리를 알지 못했을 당시, 처음 접했던 책 표지와 제목은 요즘 한창 유행인 인터넷 소설의 뻔한, 흔한, 가슴 간질간질한 사랑 이야기 같은 건 줄 알았다. 도서관에 가도, 서점에 가도 책 표지가 제발 책장을 열어 나를 알아봐 달라고 매번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끝까지 외면하고 읽지 않을 다짐을 하고 또했다. 그런데 그의 인터뷰 내용들을 수집하듯 읽다 보니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제목처럼 '어쩔 수가 없다')
소설은 비교적 쉽게 읽힌다. 간결한 문장과 약 150페이지 정도로 길지 않은 분량이므로.
그런데, 진도가 나아가지지 않는, 목에 걸린 가시같은 구절들이 여기 저기 산적해 있어 책장이 쉽게 넘어가질 않는다. 빨리빨리 읽어 결말을 알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면서도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서사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자꾸 멈춰서서 뒤돌아 보게 된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백두산 기슭의 후미진 아주 조그마한 호랑이 마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백 여 명 남짓 인구가 모여 사는 호랑이 마을의 촌장과 그의 손녀 순이, 부인을 잡아간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마을로 들어온 황포수와 그의 아들 용이, 그 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벗 훌쩍이, 그리고 일본군 장교 가즈오.
소설의 중간 부분까지는 서정적인 배경의 호랑이 마을에서 몽글몽글 피어나는 순이와 용이의 설레는 첫사랑 재질의 이야기와 로맨틱 코미디에 어울릴 법한, 마치 건축학개론의 납득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훌쩍이와의 우정이야기가 차지한다. 그들의 맑고 순수함이 예뻐서, 설레서,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라는 노래를 들었을 때의 감성이 자꾸자꾸,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읽었을 때의 감성이 자꾸자꾸 삐져나와 마음 한 켠을 간지럽혔다.
용이, 훌쩍이, 순이의 우정과 첫사랑의 서사에 빠져들어 타락한 영혼이 순수해질만 하면 한 챕터가 끝나 버리는데, 챕터가 끝날 때마다 '대일본제국'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는 일본군 장교 가즈오가 자진 입대 후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떡하니 등장한다. 아무런 배경지식없이 이 소설을 접한 사람들은 챕터 마지막 마지막마다 이 편지의 수위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현실이 조금씩 더 참혹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맑은 영혼의 세 사람이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버릴 거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런 플롯에서 차인표라는 소설가의 영민함이 느껴진다.
소설이 클라이막스로 향해 가는 것은 이 양심적인 일본 장교, 대일본제국이 미개한 조선을 구원하러 자신들을 파병했다고 굳건하게 믿던 가즈오가 호랑이 마을에 도착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마치 미지의 땅에 살며 자신들을 집어삼키러 온 백인들에게 그저 순수한 온정을 베풀었던 신대륙 항해시대의 인디언, 그들처럼, 호랑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대소사를 위해 기꺼이 발벗고 나서는 일본군들에게 엄청난 호의를 느낀다. 일본군들을 통솔하던 양심 청년 가즈오 대위마저도 어느새 호랑이 마을에, 그리고 순이에게 스며든다. 이렇게 아름다운 동화같은 이야기가, 조선의 참혹한 시절에도 있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좋았을 것을. 가즈오가 순이를 사랑하게 되어 용이와 삼각관계를 이루는 막장으로 흘렀다면 덜 슬펐을 것을.
그러나 이 소설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소설이 아니다. 일본의 시커먼 속내를 눈치채지 못했던 가즈오는 일본이 위안부 동원을 위해 실시한 인구조사에 처녀 1명이라고 꼼꼼하게 적어내는 성실함을 뽐냄으로써 어느새 깊은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 짝사랑하는 순이를 본인의 손으로 일본의 위안부 동원을 위한 제물로 갖다 바치는 꼴이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즈오의 절망감, 용이의 분노, 순이의 공포는 어느 시대를 살았건 인간으로선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경험해서는 안되는 감정들이다. 태생부터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시작된 소설이므로 이 소설은 독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해피엔딩을 선사하지 않는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에서 시청자들이 고대해 마지 않던 결말과는 달리 고애신을 사랑하던 ‘바,등,쪼’를 모두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이미 썰을 다 풀었지만 더이상의 스포는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므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가까운 서점으로 가시기를...)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 합의를 통해 얻은 것은 ‘결국 일본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겠구나, 아니 사과할 마음이 없구나’라는 사실뿐이었다. 그러므로 애석하게도 차인표 작가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유, 진정한 사과와 화해는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자국의 잘못을 인지하고, 본인을 희생하면서 순이에게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전한 가즈오의 마지막 인사로 위안부 할머니들은 현실에서 받지 못한 사과를 대신 받으셔야 할 것 같다.
문학은 사회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기 때문에 우리는 250년 전 이야기에도, 기원전 이야기에도 80년 전 이야기에도 열광한다. 마지막 책장을 닫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먼훗날 우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다 잊게 되었을 때 ‘이 책이 우리에게 일깨워 주겠구나. 그 시절, 외마디 비명소리 한번 내지도 못하고 시들어간 열여섯, 열여덟의 꽃들이 있었다고. 그들의 마음 속엔 별 하나가, 꽃 한다발이,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의 노래가 있었다고.’
그리고는 어쩌면 몇 십 년 후에 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라는 소설이 국어 교과서에, 역사 교과서에 실려 ‘우리의 어여뻤던 꽃다운 소녀들이 겪은 비극’을 증언하는 하나의 기록으로 남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상상을 해 보았다.
의식있는 차인표 소설가의 삶에 존경을 표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슈퍼스타 연예인으로서 겸손함을 잃지 않고 20년 넘게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했다. 그리고 일회성이나 보여주기식 선행이 아닌 부부가 함께 실천하는 한결같은 봉사활동가로서의 모습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했다. 또한 공개입양을 통해 두 딸을 입양하고 마음으로 낳는 자녀에 대해 국민의 인식을 바꿀 수 있게 한 것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 위에 그가 보여준 '나라도 써야겠다'라는 위안부 소재의 소설은 깊은 울림을 준다. 소설을 써 본 적도 없는 그가 내 준 용기와 십 년을 포기하지 않고 써 낸 인내와 소재와 구성과 결말마다 그가 담아내고 싶었던 작가 의식이 주는 깊은 울림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순전히 개인적인 소감이니 여과없이 써내려가 작가에게 불편함을 주었거나 읽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주었다면
짧은 식견과 거친 문장을 용서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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