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 중학생 때 소설작가로 데뷔해 예고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인 2009년 생이 1억월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에 가입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다 큰 어른인데도 뉴스를 접한 후 처음 다가온 감정은 ‘시샘과 부러움’.
‘어린 아이가 어떻게 그리 큰 돈을 모았을까? 기부를 이정도 했으면 번 돈은 얼마나 되는거지?’라는 성숙하지 못한 감정이 먼저였다. 그리곤 잊었다.
도서관에서, 서점에서 중, 고등학생들의 손에 놓인 <윤슬의 바다>라는 책이 부쩍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얼마나 재미있길래, 얼마나 문학성이 있길래 베스트셀러 섹터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제목이 너무 심오하므로, 기대를 하며 책장을 열었다. 내가 좋아하는 ‘윤슬’이, ‘바다’가 다 있어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여주의 이름이 윤슬, 남주의 이름이 바다, 이 두 고등학생의 아주 잔잔한 마음나눔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읽다보니 내용이 유치하기도 하고 말랑거리기도 하고, 문장이 엉성하기도 하고 심오하기도 하고, 그래서 작가가 누구야? 하는 마음에 작가 페이지를 열었더니, 2009년생이란다. '2009년에도 누군가 태어났구나.' 너무 낯선 작가의 생년이 고작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사실로 인지되었을 때, 둔기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고1 때 나는 근사한 어른이 될 거라는 허황된 꿈과 교회 오빠 쫓기에 바빴는데....)
새삼 경외감이라는 감정은 이런 것인가라고 곱씹으며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 ‘그래, 지난 여름 바다에서 본 윤슬은 너무 아름다웠지, 바다에 깃든 윤슬이라..’하는 소녀 감성에 젖어서.
그리고 학생들의 답안지에서 한 자라도 틀린 글자가 나오면 여지 없이 X표를 그어 버릴 선생님처럼 소녀 작가의 미숙함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쾌재(사전에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되어 외치는 통쾌한 외침'이라고 쓰여 있음)를 불렀다. 하지만 읽은 페이지가 남은 페이지보다 많아질수록 퍽 불편한 감정이 아니 작가의 내공에 대해 어른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묵직한 울림이라는 감정이 올라왔다. 여러 서평이나 작가의 글처럼, 이 소설은 단순히 선배에게 반한 여학생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지만 진심으로 다가가는 엄친아 재질의 남학생에 대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우리의 상상력이 무한 증식되어 다가올 미래에 혹시 실제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을 초능력자에 대해, 생명을 경시하는 생체 실험에 대해, 그리고 편견이 낳은 사회적 편견과 국가 권력의 폭력성에 대해 무한 화두를 건네는 가벼운 분량의 무거운 책이었다. 아직은 거친 필력일지는 모르겠으나, 책장을 덮으면서 앞으로 백은별이라는 소녀 작가가 얼마나 무섭게 성장할지에 대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나 작가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이 시대 청소년들이 또래인 백은별 작가를 통해 생각의 전환을 하는 계기를 전달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간절하다.
우연히 접한 10대 소녀의 1억 기부 뉴스, 우연히 접한 소설책의 작가가 그 뉴스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우연히 접한 <윤슬의 바다>라는 서정적인 제목의 소설이 다룬 내용들 보다 꿈을 잃고 방황하는, 아니 꿈조차 꾸지 않고 미디어의 세계에서 부표없이 유리(流離)하는 10대들에게 이 소녀의 행보가 큰 울림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완성형이 아니어도 어느날 문득 떠오른 질문하나에 의지해 써내려간 소설을 크라우드 펀드로 출간하고, 본인의 작품이 아직은 유치한 내용을 다루더라도 그렇게 쓰고 싶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 소녀의 발걸음이 긴긴 밤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해 꿈을 찾아 종횡무진해야 할 벌건 대낮에는 학교에서건, 학원에서건, 집에서건 시들시들한 십대들에게 아주 명쾌하게 알려 주길 기대한다.
‘아직 어리니까, 아직 희망이 있으니까, 뭐든 해 보는 거지, 그게 젊음’의 축복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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