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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가12] 파가니니 - 최초를 써내려 간 굿즈 재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그 대가로 고난도의 연주기술을 얻게 된 파가니니 19세기 바이올리니스트의 상징이며, 낭만주의를 예고했으며 비르투오소의 시대를 연 최초의 연주가 음악의 낭만주의 시대를 연 선구자로, 후대 대표 낭만주의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 로베르트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등에 크게 영향을 줌 1.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 1782-1840, 이탈리아) 이탈리아 제노바 항구 부두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는 아마추어 음악가이기도 한 아버지 안토니오 파가니니에게 음악의 기초를 배워 다섯 살 무렵에는 만돌린과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었고, 본격적으로 음악 수업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반년이면 스승의 실력을 따라잡는 놀라운 재능의 소.. 2024. 1. 30.
[클래식-음악가11] 리스트 - 19세기 여성팬을 몰고 다닌 관종(?) 아이돌 1. 프란츠 리스트 (Ferencz Liszt, 1811 ~ 1886) 리스트는 1811년 10월 22일 헝가리 전통적 귀족인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집사였던 아담 리스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후작의 악단에서 첼로를 연주하고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고, 아들 리스트에게 여섯 살이 되던 해부터 피아노를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일찍부터 싹트기 시작한 리스트의 천재적 재능에 놀라 그의 아버지에게 천재 소년에게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시키도록 권유했고, 그리하여 리스트는 베토벤의 제자였던 체르니(네~ 그 체르니 맞습니다)에게 처음으로 전문적인 피아노 교육을 받았고 이어서 베토벤의 스승이기도 한 살리에리에게 화성과 작곡을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기본기를 갖춘 리스트는 1822년.. 2024. 1. 28.
[클래식-음악가10] 멘델스존2 - 세대를 뛰어넘는 브로맨스 (feat. 괴테) ‘제2의 베토벤을 예견한 19세기의 모차르트’ - 슈만 - “멘델스존이 어린 나이에 이룬 성취를 당시의 모차르트와 비교하면, 다 자란 어른의 교양 있는 대화를 어린아이의 혀짤배기 소리에 비교하는 것과 같네.” - 괴테 - 감상에 대한 것은 개인적 취향이겠지만 이런 위인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는 평이니 멘델스존의 음악성은 그의 배경이나 외모로 인해 저평가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영화계의 젊은 시절 디카프리오, 브레드 피트처럼요.)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독일) 25세 청년기에 집필해서 주인공의 옷차림부터 베르테르 신드롬까지 불러 일으켰던 , 대학 졸업 후 쓰기 시작해 사망 1년 전에야 완성한 60년이 걸린 대작 를 집필한 설명이 필요.. 2024. 1. 27.
[클래식-음악가10] 멘델스존 - 그가 행운아(Felix)였다고요? 작곡, 연주, 지휘 능력에 5개 국어에 능통했던 천재적인 재능, 부유한 가정환경, 준수한 용모, 세련된 사회성 모든 것을 갖춘 19세기의 사기캐, 멘델스존 꽃비단길처럼 행복했지만 너무 짧았던 생 1.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년 2월 3일에 함부르크에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멘델스존은 그의 이름 펠릭스(Felix)가 '행운아'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단순한 금수저가 아닌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최고의 명문가 출신이자 계몽주의 철학자였던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으로부터는 지적 재능을, 독일에서 은행을 처음 운영한 은행장이자 베를린 시의회 의원으로 금융재벌이었던 아버지.. 2024. 1. 26.
[클래식-음악가9] 쇼팽의 노스탤지어, 명곡 탄생의 비결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의 '향수' 중에서 쇼팽에게서 한 번도 잊혀지지 않았던 그 이름, 조국. 쇼팽 음악의 원천은 떠나온 조국에 대한 노스탤지어(Nostalgia, 향수)가 아니었을까요? 1. 폴란드에서 쇼팽의 위상 쇼팽의 나라, 폴란드에 가면 쇼팽의 이름을 딴 국제공항을 마주하게 되고 수도 바르샤바에는 쇼팽의 박물관이 마련되어 있죠. 그리고 1927년부터 쇼팽을 기리기 위해 개최되는 세계 최고의 피아노 국제 피아노 콩쿠르( International Frederick Chopin Piano Competition)는 5년에 한 번씩 쇼팽의 기일인 10월 17일 전후 3.. 2024. 1. 25.
[클래식-음악가7] 슈베르트2 -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를 아시나요? 1. 비운의 악기 - 아르페지오네(Arpeggione) 1797년생인 슈베르트는 기타리스트였다고도 전해지고, 너무 가난하여 기타로 모든 곡을 작곡했다고도 전해지고, 사망 8개월 전 1828년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피아노를 장만할 수 있었을 정도로 어쩔 수 없이 기타로 작곡을 했다고도 전해지는데, 18세기에 일어난 일들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무엇이 진실인지는 확인할 길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슈베르트가 활동하던 시기 음악의 도시 빈에서는 피아노 반주 노래보다 기타 반주 노래가 훨씬 더 유행했다고 합니다. 피아노는 쇼팽이 한창 활동하던 19세기 중반에 와서야 예술적인 악기로 부상하게 되었고요.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리라가 기타의 전신이라면 기타의 역사는 어마무시하게 오래된 셈이네요.. 2024. 1. 24.
[클래식-음악가8] 슈만과 클라라 - 예비 장인 고소장 제출해 보셨나요? 1. 클라라 슈만의 초기 생애 2002년 유럽 연합의 통화가 유로화로 통합되기 이전, 독일의 100마르크 지폐에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음악가였던 클라라 슈만의 초상이 삽입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천재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의 필생의 연인으로 더 알려져 있지만 그녀는 당대 유럽 전역에 천재 음악가로 명성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서양음악사와 독일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여성 중 한명입니다. 클라라 조세핀 비크 슈만(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은 1819년 9월 13일 작센 왕국(現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프레드리히 비크(Johann Gottlob Friedrich Wieck, 1785 – 1873)라는 음악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 2024. 1. 23.
[클래식-음악가7] 슈베르트1 - 겨울나그네 같은 생계형 작곡가 Franz Peter Schubert 가난과 병마 속에서 짧은 삶을 살다간 '가왕(가곡의 왕)' 음악에 있어서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세상이 알아보지 못해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너무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여린 감성으로 병적 낭만주의자로까지 불리는 슈베르트의 낭만성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고, 낭만주의 시대 예술가의 전형적인 비극적 삶을 대표합니다. 1.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오스트리아 빈) (드디어, 고전시대의 그 막을 내리고 낭만시대의 지평을 연 슈베르트는 음악의 도시 빈 출신이네요.-앞 포스팅 참고) 빈 근교 리히텐탈(Liechtental) 성 밖의 Himmelpfortgrund(천국의 문) 지역에서 태어난 슈베르트의 농민 출신 학교장을.. 2024. 1. 23.
[클래식-음악가6] 베토벤3 - 롤 모델 모차르트와의 일화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서거와 함께 시작된 고전시대는 베토벤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낭만의 시대 새로운 지평을 연 고전주의의 대표 작곡가는 18C 중반-19C 중반에 걸쳐 음악과 낭만의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고전주의 음악의 중심지였던 빈에서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다는 점이지요. 이 세 사람의 연결고리는 (베토벤의 첫 번째 글에 이미 써 놓았듯이) 베토벤의 스승이었던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였죠. 네페는 아버지의 학대에 고통받던 베토벤에게 "좋은 음악이란 개인의 무한한 표현"이라는 진정한 음악을 가르쳐 준 은사였고 베토벤은 그에게 항상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편지를 썼다고 해요. 1. 하이든과의 만남 - 본에서 빈으로 1.. 202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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